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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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1. 15:11
책방오늘, 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 Primo Levi, 1919-1987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너는 파시스트가 아니야. 파시스트는 모두가 똑같기를 원하는데, 너는 그렇지가 않아.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것이다. 꼭 들어맞는 그 말, 그러니까 적합하고 짧고 힘 있는 언어를 찾으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해내고 최대한 정확하게, 최소한 거추장스럽지 않게 묘사하는 일은 흥분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가혹했던 기억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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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3. 2. 11:47
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닙니다.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진정한 장소』 중에서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 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나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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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작가: 조지 오웰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2. 27. 17:43
2월의 작가, 조지 오웰 George Owell, 1903-1940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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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작가: 박완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1. 7. 17:03
1월의 작가, 박완서 朴婉緖, 1931-2011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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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0 2021. 1. 7. 16:57
12월의 작가, 에이드리언 리치 Adrienne Rich, 1929-2012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 왔다. 난 손전등에 불을 켜 비춰본다 물고기나 해초보다 더 영원한 어떤 것의 측면을 따라 천천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 그 자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 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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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작가: 루시아 벌린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0 2020. 8. 15. 18:39
8월의 작가, 루시아 벌린 Lucia Berlin, 1936-2004 루시아 벌린은 미국 서부의 탄광촌과 칠레에서 십대 시절을 보낸 뒤 스물네 살에 처음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고등학교 교사 등의 일을 하며 홀로 네 아들을 부양하는 가운데 밤마다 글을 썼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알코올 중독, 평생 지속된 지병 속에서 77편의 빼어난 단편소설들을 발표했으며, 사후에야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삶의 모습에 경탄하게 만드는'(뉴욕타임즈) 작가로 재발견되어 주목받았다. 국내에는 단편선집 『청소부 매뉴얼』, 『내 인생은 열린 책』이 출간되어 있다. *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은 그날그날 생활의 무늬와 리듬을 따라 천천히 표류할 따름이다. 통증과 구토로 가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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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작가: 백석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0 2020. 7. 2. 19:26
7월의 작가, 백석 白石, 1912-1996 본명 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0년, 1935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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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작가: 토베 얀손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0 2020. 6. 10. 16:04
6월의 작가, 토베 얀손 Tove Jansson, 1914-2001 191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15세 무렵부터 잡지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헬싱키와 스웨덴 스톡홀름,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45년 『무민 가족과 대홍수』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무민'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생의 반려자 툴리키 피에틸레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아동 문학뿐 아니라 소설, 미술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비록 고달프긴 했으나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한 삶이었노라고, 아주 행복한 삶이었고, 살면서 가장 중시했던 두 가지는 일 그리고 사랑이었노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토베 얀손은 2001년 87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