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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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작가: W.G. 제발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2. 8. 17. 18:36
책방오늘, 겨울의 작가 W. G. 제발트 Winfried Georg Sebald, 1944-2001 실제로 내가 미혹당한 사람처럼 한가운데 서 있었던 그 대합실은 마치 내 과거의 모둔 시간들과 이전부터 억눌리고 사라져 버린 불안과 소망을 포함하고, 내 발 아래 돌로 된 바닥의 검고 흰 다이아몬드 무늬가 내 생애 마지막 게임을 위한 운동장인 듯한, 시간의 전 차원으로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홀의 반쯤 침침한 빛 속에서 1930년대 스타일의 차림새를 한 중년 부부를 보았는데(...) 나는 그 사제와 부인뿐 아니라 그들이 데리러 온 남자아이도 보았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 그러나 바로 그 작은 배낭 때문에 나는 그를 알아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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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작가: 다와다 요코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9. 1. 15:19
책방오늘, 가을의 작가 다와다 요코 Yoko Tawada, 1960- 자는 동안에는 우린 모두 혼자잖아요. 꿈속에는 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출발지에 남겨진 사람도,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버린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애당초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요. 보세요, 땅의 이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대 밑을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달라요, 발밑에서 땅을 빼앗기는 속도가. 아무도 내릴 필요 없어요. 모두 여기 있으면서 여기 없는 채로 각자 뿔뿔이 흩어져 달려가는 거예요. - 『용의자의 야간열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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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안토니오 타부키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6. 1. 15:46
책방오늘, 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1888 - 1935 그들은 내가 누가 아닌지를 곧바로 알아봤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고 거울로 날 봤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 있었다. - 「담배 가게」 중에서 안토니오 타부키 Antonio Tabucchi. 1943 - 2012 더 설명해주세요, 페소아가 말했다. 난 당신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당신의 어두운 부분이지요. 이것 때문에 난 당신의 선생입니다. 근처 마을에서 종이 몇 번 울렸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페소아가 물었다. 내 목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 『꿈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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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30. 16:19
책방오늘, 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생각에 잠겨 달빛 속을 걷는 사람은 달빛만으로도 만족하고, 그 빛은 그의 내면의 빛과 잘 어울린다. 달빛이 햇빛만큼 강하거나 밝지는 않지만, 빛의 양과 지상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을 가지고 달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시인은 달빛의 영향을 받은 생각의 흐름을 의식한다. 나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일상적인 산만한 생각들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한다. -『달빛 속을 걷다』 중에서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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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1. 15:11
책방오늘, 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 Primo Levi, 1919-1987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너는 파시스트가 아니야. 파시스트는 모두가 똑같기를 원하는데, 너는 그렇지가 않아.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것이다. 꼭 들어맞는 그 말, 그러니까 적합하고 짧고 힘 있는 언어를 찾으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해내고 최대한 정확하게, 최소한 거추장스럽지 않게 묘사하는 일은 흥분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가혹했던 기억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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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3. 2. 11:47
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닙니다.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진정한 장소』 중에서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 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나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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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작가: 조지 오웰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2. 27. 17:43
2월의 작가, 조지 오웰 George Owell, 1903-1940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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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작가: 박완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1. 7. 17:03
1월의 작가, 박완서 朴婉緖, 1931-2011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