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작가
-
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안토니오 타부키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6. 1. 15:46
책방오늘, 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1888 - 1935 그들은 내가 누가 아닌지를 곧바로 알아봤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고 거울로 날 봤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 있었다. - 「담배 가게」 중에서 안토니오 타부키 Antonio Tabucchi. 1943 - 2012 더 설명해주세요, 페소아가 말했다. 난 당신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당신의 어두운 부분이지요. 이것 때문에 난 당신의 선생입니다. 근처 마을에서 종이 몇 번 울렸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페소아가 물었다. 내 목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 『꿈의 꿈』 중에서
-
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30. 16:19
책방오늘, 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생각에 잠겨 달빛 속을 걷는 사람은 달빛만으로도 만족하고, 그 빛은 그의 내면의 빛과 잘 어울린다. 달빛이 햇빛만큼 강하거나 밝지는 않지만, 빛의 양과 지상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을 가지고 달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시인은 달빛의 영향을 받은 생각의 흐름을 의식한다. 나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일상적인 산만한 생각들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한다. -『달빛 속을 걷다』 중에서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월든』 중에서
-
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1. 15:11
책방오늘, 4월의 작가 프리모 레비 Primo Levi, 1919-1987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너는 파시스트가 아니야. 파시스트는 모두가 똑같기를 원하는데, 너는 그렇지가 않아.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것이다. 꼭 들어맞는 그 말, 그러니까 적합하고 짧고 힘 있는 언어를 찾으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해내고 최대한 정확하게, 최소한 거추장스럽지 않게 묘사하는 일은 흥분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가혹했던 기억의 짐..
-
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3. 2. 11:47
3월의 작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닙니다.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진정한 장소』 중에서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 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나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
2월의 작가: 조지 오웰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2. 27. 17:43
2월의 작가, 조지 오웰 George Owell, 1903-1940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
-
1월의 작가: 박완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1. 7. 17:03
1월의 작가, 박완서 朴婉緖, 1931-2011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