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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판 이야기-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거예요.
    Introduction/간판 이야기 2019. 8. 29. 18:43

    일러스트레이션 ⓒ 김중일

     


     

     

     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거예요

     

     

     저희 서점의 간판 자리에는 책방오늘, 이라는 상호 대신 문장이 씌어 있습니다.

     

     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거예요.

     

     어린 시절, 세상 모든 간판들이 의미있는 문장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다같이 약속을 해서 상호들은 그 아래에 쓰면 좋겠다고요. 간판들마다 문장이 적혀 있다면 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또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수많은 문장들을 읽게 되고, 그 문장들을 내건 주인들과 마음 속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고, 도시 전체가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그런 터무니없는 몽상을 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점을 내면서 상호 대신 어떤 문장을 적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떠오른 것이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티 라이트>에 나오는 대사였습니다. 오갈 데 없이 가난한 주인공 사내(찰리 채플린 분)는 어느 밤 한 백만장자 신사가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깜짝 놀라 그를 만류하며 채플린은 말합니다. 무성영화라서, 장면이 잠시 멈추고 거친 진회색 화면에 대사가 나옵니다. '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텐데요.'

     

     사실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대학 시절-고민도 많고, 절망도 깊었던 때-에, 그 장면은 무슨 빛을 품은 화살처럼 예리하게 저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세상에는 절망할래야 절망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하자면 새들이 노래하는 것과 같은 일이 내일도 또다시 일어날 거라는 당연한 사실이, 이상하고 단순한 힘으로 그 시기의 저를 구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서점은 저녁 여덟 시에 문을 닫지만, 간판에는 밤새 불을 밝혀 놓습니다. 길 떠나는 배처럼 환하게요. 그 불빛을 타고 이 문장이 도시의 밤 속으로 새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무용한 몽상을 합니다. 늦은 퇴근길 지친 몸으로 버스에 실려 돌아가는 분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이 앞을 지나는 이들에게, 아주 작고 미미한 밝음이라도 좋으니 이 문장이 여린 빛으로 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부서지지 말아요, 우리. 내일도 새들이 노래할 텐데요.

     

     

    2018년 9월,

    창간호 『책방오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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