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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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작가: 아니 에르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2 2022. 12. 1. 12:45
책방오늘, 겨울의 작가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1940 - 제가 글을 쓸 때 정확하다는 느낌은 명백함처럼 필요불가결한 어떤 것이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열정에 젖으면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나아가잖아요. 확신을 갖고. 무언가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죠. 글을 쓰면서도 마찬가지예요. 이 명백한 감정이, 이 확신이 책을 쓰는 내내 지속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의심하고 재검토하는 순간이 있죠. 그렇지만 시작할 때는 이 감정이 저에게 필요해요. 그 이후부터는 아무것도 저를 막을 수 없죠. 위험하다는 느낌조차도요. 위험하다는 느낌은, 바로 지시이니까, 책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이 내리는 지시요. - 『진정한 장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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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작가: 시몬 베유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2 2022. 9. 1. 20:48
책방오늘, 가을의 작가 시몬 베유 Simone Weil, 1909-1943 이따금 어떤 사람이 스스로 숙고한 끝에 자신의 영혼을 되찾습니다. 헥토르가 트로이아를 마주하고 그랬듯, 신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홀로 운명을 마주하려 할 때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되찾는 또 다른 순간은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중에서 한 인간 존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한계 시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선에게 '네!'라고 말할 능력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입니다.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중에서 최대한 멀리 갈 각오를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는 채로 떠밀려 가겠노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중력과 은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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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작가: 존 버거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2 2022. 8. 17. 19:30
책방오늘, 여름의 작가 존 버거 John Berger, 1926-2017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줄을 쓴 다음엔 단어들이 다시 자신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거기에서 한무리의 다른 단어들이 그 말들을 알아보고 맞아 준다. 그들 사이에 의미의 유사함, 반대 의미, 비유, 운율이나 리듬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담소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함께 단어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부여하기로 한 의미를 놓고 경쟁한다. 그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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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작가: 앤 카슨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2 2022. 8. 17. 19:23
책방오늘, 봄의 작가 앤 카슨 Anne Carson, 1950-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는 작은 자서전이다. 소리의 내면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는 궤적은 공적이다. 외부로부터 투영된 한 조각의 내부 -「소리의 성별」 중에서 밤이 잠든 사람 위로 무릎을 꿇는다. 그의 여행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어디까지 태워버릴 것인가? 그리고 이제 그는 무엇을 위해 헤엄치는가. 헤엄쳐라, 잠든 사람이여, 헤엄쳐. -「TV 인간: 잠든 사람」 중에서 명상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사랑과 증오의 복잡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언뜻거리는 내 고독한 영혼의 누드를 보았다. 하지만 그 누드들은 밤새 빨랫줄에 매달린 채 얼어붙어 있는 빨래들만큼이나 여전히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것들은 모두 열세 개였다. 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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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작가: W.G. 제발트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2. 8. 17. 18:36
책방오늘, 겨울의 작가 W. G. 제발트 Winfried Georg Sebald, 1944-2001 실제로 내가 미혹당한 사람처럼 한가운데 서 있었던 그 대합실은 마치 내 과거의 모둔 시간들과 이전부터 억눌리고 사라져 버린 불안과 소망을 포함하고, 내 발 아래 돌로 된 바닥의 검고 흰 다이아몬드 무늬가 내 생애 마지막 게임을 위한 운동장인 듯한, 시간의 전 차원으로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홀의 반쯤 침침한 빛 속에서 1930년대 스타일의 차림새를 한 중년 부부를 보았는데(...) 나는 그 사제와 부인뿐 아니라 그들이 데리러 온 남자아이도 보았어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 (...) 그러나 바로 그 작은 배낭 때문에 나는 그를 알아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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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작가: 다와다 요코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9. 1. 15:19
책방오늘, 가을의 작가 다와다 요코 Yoko Tawada, 1960- 자는 동안에는 우린 모두 혼자잖아요. 꿈속에는 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출발지에 남겨진 사람도,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버린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애당초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요. 보세요, 땅의 이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대 밑을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달라요, 발밑에서 땅을 빼앗기는 속도가. 아무도 내릴 필요 없어요. 모두 여기 있으면서 여기 없는 채로 각자 뿔뿔이 흩어져 달려가는 거예요. - 『용의자의 야간열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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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안토니오 타부키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6. 1. 15:46
책방오늘, 여름의 작가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1888 - 1935 그들은 내가 누가 아닌지를 곧바로 알아봤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고 거울로 날 봤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 있었다. - 「담배 가게」 중에서 안토니오 타부키 Antonio Tabucchi. 1943 - 2012 더 설명해주세요, 페소아가 말했다. 난 당신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당신의 어두운 부분이지요. 이것 때문에 난 당신의 선생입니다. 근처 마을에서 종이 몇 번 울렸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페소아가 물었다. 내 목소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카에이루가 말했다. - 『꿈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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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달의 작가, 이 계절의 작가/2021 2021. 4. 30. 16:19
책방오늘, 5월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생각에 잠겨 달빛 속을 걷는 사람은 달빛만으로도 만족하고, 그 빛은 그의 내면의 빛과 잘 어울린다. 달빛이 햇빛만큼 강하거나 밝지는 않지만, 빛의 양과 지상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을 가지고 달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시인은 달빛의 영향을 받은 생각의 흐름을 의식한다. 나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일상적인 산만한 생각들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한다. -『달빛 속을 걷다』 중에서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월든』 중에서